
손수진 지음
북하우스
2008.05.13
309page
화려한 색채가 먼저 들어왔다. ....그것은.....일종의 거부감이기도 했다. 약간의 활자중독증을 가진 나로서는....선정적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다채로운 삽화가 어지럽기까지 했다. 기방 안을 들여다 본 여염집 여자의 어리둥절함 같은 것을 이책을 열어보면서 맛보았던 것 같다. 작은 문자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진 문고판의 평화가 그리웠다. ............어쩌면...나는....사랑이라는 것도 ...문고판같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첫사랑과 결혼하고 싶어했고 아무런 굴곡없이 평화로운 가정의 안주인이기를 워했던 나는..............여전히 사랑에 있어서 문고판으로 남아있을까? 문고판이기를 원할까? 아니면...화려한 삽화와 자유로운 문체로 쓰여진 이 책 '낭만주의자의 연애 세포 관찰기'라는 책처럼 당차고 자유로운 사랑을 옹호하고 있을까?
1. 사랑.......화려한 포장지의 사탕을 손에 쥔 아이
사랑의 시작은.......놀이 동산의 과자 코너에서 파는 사탕과 비슷하다. 화려한 포장지를 벗겨 보고 싶은 본능에 가까운 충동. 그것을 을 억제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신경세포를 건드리는 누군가를 비켜쳐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든 사랑의 시작은 비슷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사랑이 없는 이유는......내가 부여하는 의미들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저자 손수진은 그남자의 '이걸 어째'라는 저음의 목소리에 의미를 부여한다. 각양각색의 화려한 수만개의 사탕 중에 내가 집어든 사탕이 유일한 이유가 백만개는 되는 것처럼 사랑의 시작도.....자기만이 아는 특별함때문이리라.
2. 사랑의 일상화....이별에 가까워지는 지름길. - 늘 내 손 안에 들려있는 사탕의 포장지는 더이상 화려하지 않다.
'네가 없는 내가 이제는 상상이 않돼'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었다. ...........그땐......그사람 뿐아니라 나도 역시 그랬다. 일상이 그의 색깔로 채색되어가는 과정이 사랑의 진행일테니까. 그와 나는.......그래서 겁이 난다고도 말했던 것 같다. 사랑이 깊어지는 정점을 지나면 이별이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탓이리라. 익숙해진다는 단어는 편안하지만 설레이지 않는 이중성을 가진다. 사랑이 일상이 되어간다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고 슬픈 것이다.
3. 이별......세상에 모든 이별은 아프다. 사탕 많이 먹으면 이빨만 썩어 아픈 것처럼.
이별의 중후들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것도 모든 이별에 공통적으로.
그럼에도.....세상의 모든 이별은 아프다. 분노와 기다림의 과정을 거치면 체념의 경지에 다다르고 시간이 지나면 잊혀짐의 열반에 들게 된다.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 예정된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 모든 사랑의 공통점이지만...모든 사랑은 특별하고 그만큼 어떤 이별이라해도 이별은 상처를 동반한다. 사랑이라는 것도 일종의 항상성이 있는 것 같다. 생명체가 항상 최적의 생존조건을 맞추면서 생명을 지속시키려고 하는 본능을 가진 것처럼 사랑도 스스로를 치료한다. 이별이라는 상처에 필요한 것은...결국...적당한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내가 더이상 이렇게 가볍게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상처투성이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 슬펐다. 삶이 나를 이렇게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버리게 했다는 원망보다는 사랑의 순수성과 싱싱함을 거부할 만큼 지쳐버린 내가 안타까웠다. 나는......항상 사랑에 목말라하면서도 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은 유토피아 같은 것일테니까.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면서도 모든 문제의 근원이 사랑이다. 가장 완전하면서도 가장 불완전하고, 가장 강하면서도 가장 나약하며, 가장 선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것......그것이 내가 아는 사랑의 전부이다.
사랑의 시작과 진행, 이별의 과정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예쁜 책......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지루했다. 깊이가 없다거나 지나치게 일상적이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것을 예쁘게만 받아들이기에는.....너무도 많은 사랑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삽화가 예쁜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평면적이지만은 않다. 말할 수 없는 친밀함임과 동시에 무서운 냉정함이기도 한 것이 사랑이다. 이별이 아픈 이유는 친밀함의 이면에 있는 냉점함을 보아야하기 때문인 것처럼 ......사랑의 여러가지 얼굴은 때때로 인간을 설레이게 하고, 공격하고, 기대하게 하고, 허무하게 한다. 그렇게 뜨겁던 것이 한 순간에 없어져 어느곳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무서운 배신일 것이다.
.............불행히도......이 책은 그것이 빠져있다. 냉정한 평가 일런지는 모르지만.....이 책......화려하고 아름다운 삽화가 전부이다. 이글루스 가든 - 일주일. 한 권의 책과 사랑하기.